양주파(楊州派) 파조(派祖)는 16세(世) 휘(諱)는 운영(雲榮)은 14세(世) 휘(諱) 여기(汝機)의 둘째아들 15세(世) 휘(諱) 작(綽)의 아들로 파조(派祖)이하 후손들이 경기도 남양주시(南楊州市) 진접읍 금곡리에 세거(世居)하면서 집성촌을 이루어 번성 돈목하고 석학(碩學)이 다수 있다.
◈ 27세 휘(諱) 원철(源喆) 자 : 우경(禹卿) 호 : 우남(羽南) 종파 직장공파 16세 양주파조 휘(諱) 운영(雲榮)의 11대손으로 26세 휘 (諱) 중억(重億)의 네째아들. 건양 병-신(1896)년 7월 11일 생 계묘(1963)년 3월 14일 졸 향년 64 서기1926년에 미국 미쉬칸 주립대학 천문학 박사 학위 수령 묘 : 남양주시 진접읍 금곡리 오좌
배위 : 경주김씨 광무 경자(1900)년 11월 9일 생 임술(1982)년 8월 29일 생 묘 : 금곡리 여공 합봉 유비석
1896∼1963. 천문학자. 호는 우남(羽南). 연희전문학교가 설립되던 해인 1915년 수물학과에 입학하여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면서, 당시 이 학교에서 현대천문학을 강의한 바 있는 루퍼스(Rufus,W.C.)로부터 천문학을 배웠다.
1919년에 졸업한 뒤 모교에서 수학을 강의하다가 1922년 미국 미시간주에 있는 엘비언대학에 유학하여 1학기 동안의 공부를 마치고, 미시간대학 대학원에서 루퍼스의 지도를 받아 〈독수리자리의 에타성(星)의 대기운동〉이라는 논문으로 1926년 이학박사학위를 받았다.
이 해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에서 수학·물리학·천문학을 강의하는 한편, 여러 가지 직책도 맡으면서 교육에 헌신하였다. 연희전문학교에서의 교수생활은 일제의 탄압정책으로 투옥됨으로써 끝났으나, 광복과 더불어 설립된 중앙관상대의 초대대장으로 16년간 재임하였으며, 이 기간중 인하대학의 초대학장과 YMCA 서울지부 이사장을 겸하기도 하였다.
중앙관상대 대장직을 퇴임한 뒤에는 학술원 종신회원으로 과학발전에 공헌하는 한편, 연세대학교 재단이사장 등으로 학사행정에도 참여하였다.